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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칼럼] 영천 랜드마크는 ‘마상재’▶“조선통신사의 꽃 마상재 복원해야”
  • 기사등록 2020-02-13 23: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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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논설위원김문길 박사(일본국립교토대학 대학원 일본문화연구)


1592년부터 1598년 10월까지 임진·정유전쟁은 일본이 조선문화를 약탈한 전쟁이다. 일본은 전쟁 때 조선 문화재 약탈과 문화인을 잡아가서 부를 축적했다. 도쿠카와이에야스(德川家康)는 조선의 문화에 더욱 탐이 나서 조선통신사를 초빙했다.


조선 조정은 전쟁 때 빼앗긴 조선 문화인들을 일본이 돌려보내지도 않는데 문화교류를 하자는 초청장(조선통신사)을 받고는 반발해 조선통신사를 보내지 않았다. 당시 조·일 관계에서 관문인 대마도의 번주는 조정 의견을 참고해 잡혀 온 문화인을 돌려주는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으로 막부(幕府)모르게 초청장을 보내서 회답겸쇄환사 이름으로 들어갔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는 '회답겸쇄환사'의 위작한 명칭이다.(본지 291호, 2019.12.19.자)


일본이 위조까지 하면서 교류하자는 것은 영천의 명물인 말 잘 타는 사람을 부르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일본 무사들의 정치에서는 말 잘 타고 싸움 잘하는 인재가 가장 필요로 했던 일본이다. 통신사를 돌려주지 않으니, 결국 위작사건이 탄로가 났다. 교류가 계속되지 못했을 때 조선에 말 잘 타는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강청함에 교류는 계속되었다. 당시 교류가 계속된 것은 말 잘 타는 ‘마상재’ 때문이었다.



▣하이라이트 ‘마상재’ 영천에서 수차 공연
조선통신사 일행을 일본으로 보낼 때 영천에서는 마상재를 공연했다. 당시 마상재를 기록한 성대중의 ‘일본록’에는 「김상철 영남 관찰사는 일본에 가는 문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장려하고 품위가 있었다」고 적었다.  「말 잘 타는 마상재인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특별히 영천에서 마상재 공연이 자주 열리게 되었다. 조양각에서 행한 마상재 공연에서는 사람들로 일대가 꽉 차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날은 유별나게 음식을 차린 것이 많아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관객이 마상재능을 보고 놀랬다」는 것이 당시 광경을 기록한 김현문 ‘동사록’에도 기록돼 있다. 조선통신사의 마상재는 일본에 가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은 것이고, 관객들도 영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영천 마상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동기
말의 고장이 영천이란 것은 옛날부터 알려져서 몇 년 전부터 영천에 경마장허가가 나면서 말 문화 사업의 로드키를 영천이 잡게 됐다. 세계에 내놓을만한 위대한 우리 문화유산이자 한민족의 자랑거리인 마상재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필자는 일본역사를 수십년간 현지에서 연구할 때, 조선통신사 문화 중에 영천에 마상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세간에 알려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던 중 당시 경북도의원이었던 H씨를 만나 영천에 마상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렸다. H의원은 영천문화유산발굴과 잘사는 영천을 가꾸는데 평소 다른 의원들 보다 깊은 관심을 가졌다. H의원은 마상재를 알리기 위해 ‘마상재에 관해 도의회 5분 발언’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그리고 필자와 의논해 영천 마상재 국제심포지엄을 열기로 했다.


그때 ‘담나누미 스토리텔링연구원’에서 국제심포지엄을 주관하여 열겠다고 필자를 찾아 부산에 내려왔다. 그때 마상재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와 사료를 제공해 국제심포지엄은 성대히 끝났다. 이듬해 다시 조선통신사 행렬과 영천마상재학술세미나도 개최댔다. 국제학술세미나를 3회나 열었다.



▣영천마상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돼야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한일 양국이 노력한 끝에 지난 2018년에 등재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통신사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왜곡된 역사이다. ‘회답겸쇄환사’로 등재돼야 맞다.


조선통신사 이름으로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의 꽃은 바로 영천 마상재다.  영천의 마상재를 한국무형문화재로 등재해야 한다. 영천은 아직 무형문화재가 하나도 없다. 마상재를 영천무형문화재 제1호로 만드는 것이다. 학술발표가 3번 있었고, 경북도에 예산을 받아 마상재 축제도 3번이나 했다. 참으로 잘된 일이라 필자는 찬사를 보냈고, 제1회 때 마상재 축제를 보기 위해 참석하기도 했다.


마상재는 조선통신사 축제와 겸하여 조선통신사 행렬에 포함됐다. 나는 지인(知人)에게 말했다. 위작된 명칭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이 시행되면서 영천 마상재는 이미지가 약해졌다고 질타했다. 조선통신사는 부산에서 정부 예산을 받아 화려하게 잘하는데 영천에서 또 한다는 것은 경비만 쓰는 것이라 중복성 행사라는 지적을 한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마상재 행사를 중단한 것은 천추의 잘못이다. 마상재를 주관하는 부서(사람)가 오류를 범했어도  마상재는 계속돼야 한다. 마상재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아름다운 유산이다. 지자체들이 명품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애써 찾아 준 영천의 세계적인 마상재 문화를 덮고 간다는 것은 문화를 미래 먹거리로 개발하는 현실에도 맞지않다. 특히 영천 경마장이 들어서는 이때 마상재를 디딤돌로 전국에 말도시임을 고착시켜야 한다.


▣마상재를 오히려 일본은 문화재로 지정, 세계적 행사로 키웠다.
일본 천년의 도읍지인 국제도시 교토(京都)에 가면은 후지모리신사(藤森神社)가 있다. 이 신사는 원래 영천에서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이 교토에 가서 마상재를 올린 곳이다, 이곳은 일본 천황이 사는 곳이라 마상재가 열리면 왕가 사람들도 구경을 많이 했다. 유명한 행사였기 대문이다. 영천 마상재를 재연할 때는 말 타는 곳이라 해서 카케우마신지(驅馬神事)라 부른다. 말의신사란 뜻이다. 지금은 후지모리신사라 하고 있다. 이 신사에 매년 5월 5일 어린이 날에는 지금도 마상재를 실시하여 전국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일본의 현 마상재 행사는 영천에서 실시했던 기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기법 중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 옆구리에 사람이 붙어서 달리는 기법이 매우 독특하다. 그 모습은 기마병이 전쟁에서 싸우는 모습으로 매우 위험한 고급기술이다. 적을 기만하기위해 전쟁에서 몸을 말 옆구리에 숨기는 병술이기도 하다. 지금도 일본은 여전히 당시 영천에서 실시했던 마상재 기법을 그대로 재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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