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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 속에서 조선 역사를 찾는다③, 조선 병사 귀·코무덤 일본서 잇따라 발견 - 일본 '대명신'된 유필, 올 상반기 츠야마 귀무덤 유필(경북 영천인) 추모제 …
  • 기사등록 2021-01-23 17: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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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에서 조선 역사를 찾는다>③

지난호 =「임진 정유전쟁 포로로 잡혀간 유안(劉安)과유필(劉泌)」에 이어 


영천의 아들 유안(劉安)-유필(劉泌) 오늘의 일본 농업의 씨앗


조선 병사의 귀·코무덤 일본서 잇따라 발견

일본의 농업부강 초석된 영천의 후손 유안과 유필

일본의 '대명신'이된 유필과 그의 후손들

올해 상반기 츠야마 귀무덤. 유필 추모제 준비



▲ 본지 칼럼_김문길 부산 외국어대 명예교수(철학박사/학술박사)


본지 필진 김문길 철학·학술박사(현 한일문화연구소장)의 연구에 따르면 유안(劉安)과 유필(劉泌)은 영천 녹전동에 잠든(선령) 목음도 유씨 유전(劉筌)의 후손이다. 유전은 중국사람으로 고대 중국을 이끌어 낸 유방(劉邦)과 유비(劉備)의 자손으로 810년 신라 원성왕38년 영천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해 살았다.< 사진(下)= </span>녹전동 유전의 묘>  앞선 본지 영천시눔 321호 보도에서 유안과 유필은 임진전쟁때 일본 오카아마(岡山) 성주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의 가신인 나카시마손사에몬(中島孫左衛門)에 포로가 되어 나카시마 왜장이 살던 츠야마에 가서 신농법을 전수하고, 일본 대농업국가의 기틀을 세운 영천의 후손으로 기술했다. 이번 호에서는 유안과 유필이 일본에서 농업기술을 전수하면서 전쟁에서 일본장수들이 전쟁 전리품으로 조선 군사의 귀와 코를 베어오자 애국·애향심으로 그들의 귀·코 무덤을 만들어 조선병사의 넋을 위로한 슬픈 역사를 기록한다.<편집자 주>


▲ 영천시 녹전동 유씨 선령 유전(劉筌)의 묘>



 ◆영농기술로 일본 근대부강을 일군 유안과 유필


당시 유안과 유필의 농업기술 지도가 일본 역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있다.  400년 전 일본 쯔야마로 끌려간 유필의 묘는 지금 도로 옆 잡초와 갈대 속에 놓여있다. 비석에는 유필의 '묘'라는 글귀만 회미하게 보인다. 그리고 유안의 뼈가 담겼던 납골석이 있다. 


유필의 선조인 유전의 묘는 경북 영천시 녹전동 선령에서 후손들이 잘관리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유필의 묘는 그렇지 못하다. 근년에 와서 유필의 후손 마쓰무라 가문의 사람들이 나카지마의 묘지로 이장하고 묘비와 텅빈 묘터만 남았다. 바로 '당인묘'다. 작금 일본인들이 '당인묘'의 안내판을 못마땅히 여기고 떼어버리려 한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체포되어 왔다 는 문구가 거슬리고, 후세에 좋은 말을 남기고 싶어하는 그들(일본인)의 심정이 깃들은 것이겠지만, 과거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더군다나 우리 선조의 탁월했던 문화의 한 장면이 가려지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 유필의 비문 간판


나카오씨는 다시 유안과 유필이 개간해 수전(水田)으로 농사를 지었던 들녁, 즉 '당인전'으로 안내했다, 오늘날 이 들녁은 '당인전'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오카야마 쌀 생산량의 60% 이상이 이곳에서 나온다. 유안과 유필의 농업 업적은 이 생산량이 증명하듯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카시마 고문서에는 유안과 유필의 업적을 오늘 날까지 빛내기 위해 기록한 문서에 유필의 무덤을 따서 '유필 묘지' 또는 '당인전', '당인귀무덤 만든 유필'이라 하면 누구나 잘 아는 인물로  소개했다.


쯔야마의 귀무덤은 우키타 히데이에 가신인 나카지마손사에몬이 임진 정유전쟁때 조선병사의 자른 귀를 전리품으로 가져와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나카지마는 군지휘관의 명령으로 행했던 것이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무덤을 만들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던 것 같다. 귀무덤 안내판을 쓴 마쓰오카 미키히코(松岡三樹彦)는 유필의 후손이자 향토사학자로써 이미 작고했으며, 더 많은 사료를 찾아야하지만 몇 명의 귀가 이 곳에 묻혀 있는지 지금까지 증빙사료가없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곳에 많은 귀가 묻혀 있다는 설과 귀는 이곳에 묻혀 있지 않고 나카지마 왜장이 슬픔을 애도하여 희생자의 영만 모신 것이라는 설이 있으니 그의 묘비 외에는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과연 귀가 묻혔는가 하는 문제는 사료가 발견되어야 해결되겠지만 이국땅의 역사를 삽으로 파해칠 수가 없다. 추측컨대 아마도 나카지마 왜장은 조선에서 포로로 데리고 온 유안과 유필과 향토 발전에 힘을 쏟을 때 무엇보다 조선전쟁에서 귀를 잘라 온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해 이곳에 귀무덤을 만든 것이 틀림없다. 임진왜란 때 통치자의 명령이지만 귀와 코를 잘라 통치자에게 바치지 않고 슬픔을 애도했든 흔적으로 역사는 전해준다.


이 귀무덤 옆에는 나무로 만든 기둥이 있다. 기둥에 가벼운 해석(海石)돌을 달아 놓았다. 마치 사람의 머리를 상징하여 달아 놓은 듯한 모양새다. 교토 귀무덤을 100여 년 전에 연구한 호시노 히사시 (星野恒)는 임진. 정유란 때 이름있는 조선병사들 머리를 잘라와 교토 귀무덤과 같이 묻었다는 학설을 내세웠고, 정유재란 때 우키타 히데이에는 가신(부하)들을 시켜 김해 죽림성에서 김해 의병장 서의원(徐義元)의 머리를 비롯해 수많은 조선 의병장들의 머리를 베었다는기록만 남아있다. 우키타의 가신인 나카지마 왜장도 우리나라 의병장의 머리를 이곳 귀무덤에 같이 묻지 않았나 여겨진다. 


요즘도 쯔야마 귀무덤에 참배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귀가 아픈 사람은 이곳에 와서 공을 들여 제사를 지내면 아픈 귀가 낫는다는 나카오씨의 전언이다. 이 귀무덤의 비문은 원래 높이 150cm, 폭 60cm, 두께 30cm다, 도로 옆이여서 대형 자동차가 자주 추돌해 비석의 절반 정도가 떨어져 나갔다. 비석 옆에는 돌로 미미보사쯔(耳菩薩) 즉 우리말로는 귀보살을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잘린 귀가 몇 개인가는 상관없다. 이렇게 새로 발견 된 쯔야마의 귀무덤은 반드시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비젠시의 코무덤처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여 이같은 비참한 역사 현장을 훼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필자의 염원이다.


▲ 나카시마 家


◆유안과 유필은 일본의 대명신이 되다.


영천에 살았던 유전의 후손 유필의 자손은 도쿠가와 새정부가 들어면서 쯔야마 성주 모리(森)에게 등용되어 높은 지위를 얻고 관직에 몸을 담은 자가 있었는가 하면, 나카지마와 쯔야마 일대 농경에 종사하기도 했다. 오늘날 쯔야마 지역에는 마쯔무라라는 성을 가진 자가 수 없이 많으며, 그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 퍼져있다. 도쿠가와 막부 때는 유필 형제를 대명신 (大明神)으로 추대하고, 마쯔무라 자손은 물론 쯔야마 지역민은 신당을 만들어 그(유필)를 섬기고 있다.


대명신은 어떤 신일까?. 아주 먼 옛날 고대국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부터 우수한 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될 때 일본인들은 대륙에서 들어온 새 학문과 새롭게 마련된 생활터전에 감사하여 이들을 우지가미(氏神) 즉 씨족신으로 섬겼다.


우지가미가 너무 많아짐에 따라 헤이안(平安) 시대에 와서는 조정에서 우지가미를 엄격히 조사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우지가미를 조사하고 규법을 정한 것이 『연회식(延喜式)』이라는 자료다. 이 자료에 고대사회의 집권층은 후지와라(藤原)성을 가진 귀족들이다. 이들 가운데 최고의 권력자를 우지가미로 추대해 놓은것이 나라(奈良) 카스가 신사(春日神社)다. 이때는 우지가미를 곤겐신(權現神)이라 했다. 곤겐 신은 업적과 권력에서 나왔다는 뜻인데 불교에서 쓰이는 언어다. 부처가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나올 때 곤겐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오겐(?現), 시겐(示現), 게겐(化規)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도사상이 대두되면서 곤겐인 우지가미가 대명신으로 탈바꿈했다. 신도교를 대성한 요시다 가네토모(吉田兼俱)가 죽으면서 요시다 대명신으로 바뀌었다. 신도에서는 요시다 신도가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이때가 무로마치(室町) 시대다. 이후 근대 천황제 국가로 변하면서 최고신의 자리는 천황에게 물려주고 최고신인 대명신은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져 지방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바로 유필이 추앙받는 '대명신'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지금도 대명신은 지방마다 존재하고 있으며 주로 향토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에도시대 때는 제1급 특신으로 모셔져 대접을 받았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지방 향토신으로 추락한 것이다. 쯔야마에 포로로 간 유필도 당대와 손자대에는 국가 1급 대명신으로 추앙받았다. 후손의 가서『마쯔무라 고문서』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선조 대명신종황제 만력십이갑신년 조선국 전라도 송현 출생(先祖大明神宗皇帝萬?十二甲申年朝鮮國全羅道松縣出生)", "대일본 정친정원어우경장이 정유년 미작국 점전군 일궁촌 토착(大日本正親町院御宇慶長그丁酉年美作國苦田郡一宮村소着)"이라 했으니 상당한 인물로 평가받아 제 1급 대명신으로 신봉된 것이다.


▲ 유필이 일본으로 끌려간 기록문서



◆2021년상반기 츠야마 귀무덤. 유필 추모제


본 필자와 면이 잦은 일본 헌법 제9조 신당총재 아마키 나오 히도(天木直人)와 전총리 대신 하도야마유키오는 츠야마 귀무덤을 정비하고 사죄하는 뜻에서 추모재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귀무덤을 발견한 필자에게 귀무덤 조성경위와 역사적 사실을 알기위해 연구논문원고를 의뢰해온 인물들이다. 


앞서 본 필자는 츠야마 조선인의 귀무덤에 관한 연구서를 출판한바 있다. 일본 전국 모금으로 “일한관계개선의착수는 이것이다”라는 책이다.


이에 따라 본 필자는 한일 관계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긴급제언" 했고, 그(아마키)는 "일본헌법9조 개정은 전세계 평화의 화해 시발점이다"며 본 필자와 의기투합했다. 아마키는 1970년부터1990년까지 레바론대사 러시아 대사로 부임중 세계의 평화를 부르짓은 인물이고, 전총리 하도야마는 야당으로 총리가되어 한일우호관계의 큰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두 사람이 올해 신축년 상반기에 새로 발견된 귀무덤에 사죄의 진혼재를 올려 냉각된 한일관계를 녹일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있다. 


귀무덤을 연구한 필자는 코로나가 끝나는 동시 한 많은 조선인의 귀무덤 영영들과 유필의 추모제에 참가해 임진왜란의 참혹한 역사 강연을 할 계획이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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