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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 속에서 조선 역사를 찾는다⑤...3.1운동의 재 평가 - 제2독립선언문 이라 할 수 있는 「조선 관리들의 경고 장」 발견
  • 기사등록 2021-02-24 04: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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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 속에서 조선 역사를 찾는다⑤...3.1운동의 재 평가 

제2독립선언문 이라 할 수 있는 「조선 관리들의 경고 장」 발견<사진>

3.1운동에 대한 조선 관리들의 찬·반 동향을 연구할 귀중한 자료


▲ 본지 칼럼_김문길 부산 외국어대 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장(철학박사/학술박사)


기미년(1919)3.1은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이다. 이웃 국가도 깜짝놀란 세계사적 사건이다 .

 올해로 103년 전이다 . 그러나 아쉽게도 세계사적 3.1일 운동이 후세들에게 서서히 잊혀져 가고있다. 수 년전 필자가 일본에서 발견한 문건으로 3.1만세운동이 고종황제가 독살을 당해 참을수 없는 민초들이 일어난 사건이라는 방송이 나갔다. 이때 울산의 한 여류 작가가 이 뉴스를 보고 찿아와 독살 문건을 요구하기에 넘겨 준바 있다. 그후 '덕혜옹주'란 소설이 나왔고 베스터 셀려로 수십만권이 팔려나갔다. 


필자가 발견한 '고종황제 독살' 문건은 1998년 필자가 부산외국어 대학에 제직중 일본교토대학에 파견교수로 나가 윤동주 기념회 초청으로 '일본교과서 왜곡' 에대한 강의를 교토 동지사(同志社)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접수했다. 그때 일본인 한사람이 강연후 조용히 만남을 요구해 응했다. 언밀하게 필자에게 다가와 한 원고 를 건네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소리로 "이 원고를 한국으로 가져가 언론에 보도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원고 내용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격은 이야기중 관료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습원(현:학습원대학)에서 공부 할 때 고종황제의 죽음은 총독부의 지시로 살해당했다는 문서였다. 그는 덕혜옹주의 친구가 죽을 때 이 문건을 일본지인에게 건너 주면서 세상에 알려달라는 부탁 받았다며 필자께 건너 준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그 약속을 지켰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국내에서는 '덕혜옹주'의 소설이 빛을보게 됐고, 고종의 독살사실이 사실화하면서 다시 영화까지 제작돼 지금도 상영된다. 바로 고종황제의 독살설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동기다.


바로 그 일본인이 전해준 문건의 속살을 파혜치면 고종황제의 독살에 참지 못해 일어난 것이 3.1 독립운동의 등식이 성립된다. 이 3.1운동에 앞서 먼저 2월28일 일본동경 YMC에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 전국 학산의 도화선이 된다. 


▲ 3.1운동의 제2독립선언문 이라 할 수 있는 「조선 관리들의 경고 장」 일본서 발견


독립선언서의 면면을 살펴보면 총독부밑에서 먹물께나 먹은 조선인들에게 경고하는 소위 조선 관리들에게 선포하는 제2독립 선언서라 할 수 있다. 이는 독립운동당시 조선관료들의 처신(움직임)을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가치가 있다. 당시 총독부에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3분2가량이 공무원이다.또는 재벌과 상류사회 양반들이다. 상반되지만 민초들이나 종교 지도자 학생들의 힘은 약했다. 삼천리 방방곡곡 민초들이 일어 났지만 운동가들이 바라는 것은 관료들 양반들도 총독부에 기생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호소 하는 경고성 선언문에 더 가깝다. 


제목부터 「조선 관리들의 경고」로 쓰여있다. "총독부에 녹을 먹는 조선인 관리들이여 나라가 망하는 것은 가정도 망한다. 2천만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구태의연하게 짐승같이 보고만 있지말고 이제라도 발벗고 나서라!  먹고 사는 것만 사람이 아니다. 上者(왜놈)의 눈치만 보지말고, 한품에 월급에만 메달리지 말고, 금수강산 하나 님 주신 강산 우리가 지키자. 지금 우리나라는 피로물든 산천이다. 수많은 동포가 피를 뿌리면서 죽어 가고 있다. 어서 함류해 나라를 되 찿자"는 (독립선제9일)로 되어있다.


이 내용은 3.1일 정오 파고다공원에서 성화의 불이 경기도-전라도-경북-대구-금호·영천으로 확산될 때 운동 본부에서 제2독립선언서로 발표한 것이다. 관리들 양반들이 일부는 숨어서 동조하고, 일부는 시위를 막아 왜경들의 앞잡이가 되고, 일부는 上者의 눈치만 보고 쉬쉬하고 있을때 이같은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당시 관리들이라 해서 모두 매국자는 아니다. 양반들과 돈있는자들 또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총독부의 물을 먹지않을 수 없었던 시대로 해석되는 때문이다. 


3.1운동은 대성공적으로 시작과 끝을 맺었다. 조선에서 먼저 일어난 3.1운동은 세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3.1일 운동의 성화가 불이 붙어 조선 팔도에 펴져 나갈 때 5월4일 중국 상해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나 중국 전토에 노동운동이 발발했고, 인도칸디는 영국에서 재빨리 귀국해 9월11일에 인도에서“사티아 그라하”(비폭력 무저항운동)즉 민중운동을 선언하여 세계적인 역사를 창조한 '칸디'로 귀결됐다. 이뿐인가 3.1운독립운동은 소련 불셰비키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1920년 일본 교토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자들이 공산당을 조직하는데 기인했다. 


지금까지 3.1운동은 단순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으로 연구했지만 세계정치.민중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계사적 운동의 단초역할이 됐다. 


이같이 이번에 발견된 「제2조선독립선언문의 경고장」은  3.1운동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료가치가 될뿐 아니라 이 운동에 조선 관리들의 찬·반 동향을 연구할 새로운 사료로 평가받고있어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부산외국어 대학교 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 소장 

김문길교수(010-3560-7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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