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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 속에서 조선 역사를 찾는다⑦일본천황 부인 백제인...아키 히도(明仁) 천황 NHK 방송서 고백 - 백제 24대 개로왕(蓋鹵王)의 황후, 일본서 무령왕(백제25대) 출산
  • 기사등록 2021-03-22 23: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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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에서 조선 역사를 찾는다 ⑦

일본천황 부인은 백제인...아키 히도(明仁) 천황 NHK 방송서 고백

백제 개로왕(蓋鹵王) 황후,  일본서 무령왕(백제25대) 출산 

한국과 일본은 결코 남일 수  없는 멀지 않은 역사


▲ 본지 칼럼_김문길 부산 외국어대 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장(철학박사/학술박사)


지난호 본지「일본 스진천황(崇神天皇)은 가야(伽倻)인」칼럼에서 일본 10대 천황은 기마민족 중 가야(伽倻)인이 일본으로 들어가 통일국가를 이루고 초대 천황이된 스진(崇神)천황이라 보도했다.

이번호에서는 49대 일본천황 코닌(光仁)천황의 부인이 백제인이 였다는 것을 알린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역사가들의 연구로 발표도되고 글을 쓰기도한다. 본 필자는 지난2001년 12월23일 당시 헤세이(平成)천황 아키히도(明仁)천황이 그의 68회 생일 축하식에서 “나는코닌천황 황후 백제인 타카노 니사카(高野新?)자손이다. 니사카할머니의 아들이 카무천황(桓武)이였고 지금까지 25대로 내려 오고있다”면서 선조의 족보를 밝히면서 필자를 놀라게했다.


이뉴스에 한국인들은 많은 박수를 보냈고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인도 놀랐다. 또 일본인들 더 놀랐다. 일본 우익단체는 뜻밖에 아키히도(明仁)천황의 실토에 반대 넌란도 적지 않았다. 천황 자신의 이 고백 발언은 역대 문헌을 증거 하는 조백이 아닐 수 없다. 


▲ 일본 아키히도 천황


'다카노 니사카'... '니사카'는 본명이고 '다카'는 남편 천황의 호다. 성은 와다(和)이다. 즉, 와다니사카(和新?)이다. 지금 일본 연호는 낸와(令和) 3년이다. 낸와년호를 지을 때 백제 인 황후의 얼(魂)를 따서 지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일 관계를 염두해 지은것이다. 아키히도 전 천황이 고백한 백제인 다카노 니사카의 할머니는 백제25대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다.


우리 역사에서 24대 백제 개로왕(蓋鹵王:東城王)은 일본과 연합하여 화친조약을 맺기위해 일본으로 갔다. 친교를 맺고 돌아 오는 길에 그의 황후가 만삭이 되어 귀국길에 출산 해 태어 난 사람이 백제 25대 무령왕이다. 


지난 2013년 필자는 무령왕이 태어난 곳을 찿기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조사에 나섰다. 태어난 곳은 나가 사키현(長崎縣) 해안 작은 한 섬 가카라시마(加唐島)였다. 가카라는것도 무령왕이 태여난 후부터 주민들이 지은 이름이다. 자갈이 있는 해안으로 출생장소는 동굴이다. 개로왕이 귀국시 산기가 있어 동굴에 들어가 급히 출산했던 곳이다. 


우리의 백제 25대 무령왕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섬사람들이 지금도 매년 축제때 만수무강 태평세월을 비는 제사도 지내고 있다. 산모(백제 개로왕(蓋鹵王) 황후)가 마셨다는 우물도 발견됐다. 우리 조사단이 그곳에 갔을 때 가카라시마(加唐島)에서는 소규모 축제를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나카사키 시로부터 문화제로 지정받아 한일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필자의 바램이 있다면 이곳을 더 조사하고 한국정부도 성역화 하기를 숙원한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할 때 백제는 일본과 연합했고, 이때 많은 문화가 일본으로 들어갔다. 아키히도 천황이 NHK 방송에서 자백한 발언은 일본 왕족들의 본고향은 한국 가야와 백제다. 다카노 니사카 황후의 묘에는 지금도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물론 심지어 중국인들까지 찾아와 조선의 역사를 일깨우고있다. 


2001년 12월23일 아키히도 천황이 스스로 자신의 선조는 백제인이라 고백할 때 필자는 일본 문부성 초청으로 교토에 있는 국제일본문화 연구소(國際日本文化硏究所)에 초빙교수로 제직했다. 교토는 역사,  문화 관광의 도시로 세계의 학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경주의 천년 도읍지와 같다. 


▲ 高野新笠


백제인 다카노 니사카의 묘는 경도부 카츠라시 오에야마(京都府  桂市大岐山)에 있다. 전형적인 일본 마을 야산정도다. 당시 필자가 근무한 국제 일본 문화연구소에서 10분 거리다. 일본 천황의 묘는 모두가 고분으로 되어있는데 법으로 정해놓고 있어 민간인은 절대 매장하여 분묘하지 못하지만 천황묘 만큼은 한국식 고분으로 만들었다. 


한국식 고분은  우리나라 임금의 장례법을 따라 정한 것이다. 도래왕(渡來王)의 이미지를 심기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매장의 풍습은 같지만 묘를 만든 방법은 다르다. 무덤 가에 연못을 파고 물을 가둔다. 고분위에는 나무를 심어 수백년이 지나면 숲을 이루도록 했다. 다카노 니사카황후의 묘는 산중터에 있어 물을 가두지 못했다. 아키히도천황 자신이  백제 계라 고백한 후 필자에게는 지금도 많은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 민족은 물론 문화와  문화재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일본 역대 천황도 가야에서 들어가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특히 천황의 황후도 백제에서 들어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한국은 결코 먼 일본이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다. 남일 수 없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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