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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칼럼] 오원철 전 경제수석에 대한 단상, “이 시대 경제의 초석 그가 오월에 잠들다.” - “노조들이여! 낡은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져라!”
  • 기사등록 2019-06-05 00: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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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박노광


故 오원철! 그분의 명복을 빈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공업화의 출발점이다. 6.25 이후 가난한 우리나라를 지금의 경제 강국 기틀을 마련한 초석이다. 故 박정희 전 대통령 옆에서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으로 국가 근대공업화정책의 기획·입안 및 집행을 담당했다. 독창적인 공학적 접근법으로 20년이란 짧은 기간에 수입대체산업, 국제경쟁력 있는 경공업, 중화학공업 그리고 방위산업을 순차적으로 건설하여 오늘날 국가 경제 강국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그가 지난달 30일 오전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1928년 황해도 풍천 태생인 그는 서울대 화학공업과 재학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공군 기술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해 1957년 공군 소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사천, 마산, 진해, 대구의 항공창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데 직접 참여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그가 나중에 국가 경제의 시대적 지식을 창조하는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오 수석은 군에서 전역한 후 세발자동차 공장장과 국산자동차주식회사의 공장장을 역임한 후 1961년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으로 박 전 대통령과 연을 맺는다. 이후 상공부 공업제1국장, 기회관리실장, 공·광전 차관보를 거쳐 1971년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고, 중화학공업기획단 단장을 역임했다.


박정희가 건진 故 오 전 수석은 1972년 5월 30일 무역진흥 확대회의 후 박정희 대통령과 차 한 잔하면서 “100억 달러 수출하자면 무슨 공업을 육성해야 하지?”라고 던진 질문 한마디에 ‘조국근대화’, ‘민족의 중흥’과 ‘평화적인 국토통일’로 압축하고 이를 달성하는 수단은 부국강병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각종 공업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얻은 경험을 총괄하여 공업의 단계별 육성과 엔지니어링 접근방법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한국형 경제개발 모델을 정립하였다.


후진국으로서 처음부터 국제규모의 공장을 건설해서 수출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업종류별로 단계별로 육성정책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그는 공업의 단계를 직접보호단계, 중점지원단계, 자립발전 단계, 완전국제경쟁 단계, 세계 일류화 단계로 구분하고, 정부의 역할은 각 공업이 국제규모로 커져 나가 국제경쟁력이 생길 때까지만 도와주고, 그 후에는 민간주도 형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오 전 수석은 공업구조 개편을 위해 철강, 석유화학, 기계, 전자, 조선, 비철금속 등 중화학공업의 6대 핵심 분야를 육성하는 데 그 중심적 역할을 하였고, 이를 위해 여천, 창원, 구미, 옥포, 온산 등 주요 산업단지를 조성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창원시 1호 명예시민이 됐다.


1969년 닉슨 독트린에 의하여 주한미군 제7사단이 철수하면서 안보위기가 도래하자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한 방위산업 육성과 율곡계획의 집행을 담당하면서 한국군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장비를 국산화, 현대화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원자력산업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으며, 1973년 오일 쇼크 이후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중동 진출, 플랜트 엔지니어링 산업 육성을 추진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력양성과 관련해서는 기능사, 기술자, 엔지니어, 과학자 양성을 위한 과학 기술교육제도의 개편과 각종 연구소의 설립, 대덕 연구단지 건설 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후 10여 년간 은둔생활을 하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활동을 재개한 오 전 경제수석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발전 과정을 정리한「한국형 경제건설」,「박정희는 어떻게 경제 강국을 만들었나」등의 책을 출간했다.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가 ‘10월 유신과 중화학공업의 상관관계’를 밝힌「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을 펴내는 데 핵심적인 증언도 했다, 2009년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영문 자서전 '더 코리아 스토리'를 출간하는 등 실전을 기반 한 그의 이론들이 국가 경제의 항해 등대로 자리매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창원, 울산, 거제 등지에 건설된 중화학공업의 영광이 저물어가고 있다. 작금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법인 분할 주총 승인에 반대해 파업에 돌입했고,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거제 옥포조선소를 방문해 조선해양특수선 현장을 점검해 유형자산을 확인하고 관계자들을 면담하려는 실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변화의 바람이 불 때 창조적 파괴를 외면하고 ‘회사의 주인은 교체되어도 종업원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착된 노조는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오원철 등을 수구보수주의자라 폄하 했다, 반면 낡은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힌 자신들을 진보주의로 표현하는 그 오류가 자신들의 발등을 찍은 것은 아닐까?


역사와 지나간 시간은 과거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틀렸다는 억지를 부려도 안 된다. 지금 현실의 잣대를 과거 시대에 맞춘다면 나도 역적이 될 수 있음이다. 분명 우리는 오원철, 그의 덕으로 이 시대 경제를 풍미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정희의 부름을 받아 한 시대를 관통한 테크로크라트 오원철 전 경제수석에게 고마움마음 전하며, 진심으로 그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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