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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교수와 함께 한 일본기행 - 우리 선조의 흔적을 찾아서
  • 기사등록 2016-04-07 22:46:46
  • 수정 2016-04-07 22: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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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교회 이상도 담임목사]


백제가 멸망하고 신라가 통일될 무렵 백제의 후예 지식인들이 새로운 나라(新地)를 찾아 떠난 곳이 일본이다. 대마도를 거쳐 일본에 첫 발을 들여 놓은 곳이 규슈지방이었다.


규슈에 새 터전을 개척하면서 올라간 곳이 현재 일본 나라(奈良)였으며 마지막 정착지인 이곳에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여 통일국가를 이루게 됐다. 백제의 후예들이 정착한 새로운 땅을 나라(奈良)로 정해 불렀는데 오늘날까지 일본인은 우리 백제인이 불렀던 국명 “나라”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백제의 후예들이 정착해 건축했던 동대사(東大寺)를 먼저 찾아갔다.


일본역사를 전공한 김문길 교수는(한일문화연구소소장, 부산외대교수)백제에서 들어온 승려들이 일본 고대국가를 건설할 때 동대사란 사찰을 건축하였고, 불교가 처음 일본에 전래되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동대사란 웅장한 사찰을 건축할 때는 백제의 후예 행기(行基) 승려가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모금하여 지었다고 한다.


행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 근철(近鐵)역 앞에는 세계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행기의 동상을 세웠다. 일본 사람들이 역사를 왜곡하고는 있지만 우리 백제인 후손 행기의 업적을 기려 동상을 잘 만들어 놓고 있음은 감사했다.


다음 날, 우리 일행이 묵었던 동각산(東閣山)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총(耳塚)을 찾았다. 이 곳은 임진왜란 때 전리품으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와 묻어 둔 무덤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피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은 비극적인 현장이었다. 이종후 장로(화산교회)는 “조선인의 귀와 코를 얼마나 베어왔기에 경주고분 만큼 크네” 라며 안타까워했다.


권월락 장로(화산교회)의 “영천 전투도 있었으니 영천사람 귀, 코도 여기 있겠네”란 말에 김 교수는 영천 전투는 1592년 신령 전투로 7월 21일 왜군의 기세가 활개를 치면서 영천성을 점령할때 권응수(權應銖) 의병장은 자녀들 집에 일하던 노비들까지 동원해 의병장 정대임(鄭大任)과 영천군수 김윤국(金潤國)과 합전해 영천성을 회복하기 위해 성을 공격해 많은 전과를 과시했다.


예고 없이 왜군의 손에 영천성이 무너졌고 희생된 영천군민의 희생은 말할 수 없이 많았다. 희생된 영천군민들의 귀가 잘리고 코가 잘려 일본의 교토에 묻혀 있다고 했다. 권 장로는 “우리 조상의 귀, 코, 머리가 이곳에 있다 하니 참으로 슬픈 이야기이다.”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 앞에 우리 선조들의 귀무덤이 있다는 것이 우리 일행에게는 더없는 충격이었다. 김 교수는 임진전쟁 당시 얼마나 조선인을 죽인 것인지 토요토미 눈으로 봐야겠다고 해서 토요토미 사당 앞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조선인을 죽이고 귀, 코를 베어 온 것이 12만 명이나 된다고 안내표지판에 기록하고 있었다. 12만 명은 당시 조선 인구를 생각해 보면 엄청난 숫자란 것을 알 수 있다. 귀 무덤을 연구하고 발견한 주인공인 김 교수의 안내로 찾아간 여행은 새롭고 의미가 있었다.


관서지방인 교토, 나라, 오사카, 고베에는 상당히 많은 인구가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산업도시로 성장한 오사카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사카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점도시로 임진왜란 당시부터 큰 도시로 모든 산업문화의 발상지였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오사카 성에는 토요토미의 업적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함께 한 권 장로는 “일본은 일본이다! 많은 투자를 하여 지난 역사가 되살아나도록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조선인들의 슬픈 사연을 가슴에 간직한 채 교토에 있는 ‘고향의 집’ 복지시설을 방문했다. 윤기 이사장으로부터 조선인을 위한 복지시설 설립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일본에 와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웅크리고 죽어가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이해해 조선인들이 고향처럼 살 수 있는 복지시설을 설립했고 한국인의 삶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사람답게”라는 모토가 참 인상적인 고향의 집을 뒤로 하고 오후에는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그늘진 삶의 현장인 노숙자를 위한 노숙자선교 교회를 방문해 김 교수의 통역으로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는 노숙자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난한 그들의 벗이었다.


일본여행하면 온천을 떠올렸었는데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와 아픔이 공존해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발로 밟으며 우리 선조를 생각하고 함께 아파했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하면서 마음에 그려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귀중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귀국길에 오르며 우리는 또 후손에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생각해 본다. 일본여행은 나라사랑이라는 큰 보물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글, 이상도 목사(화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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